<이장님 이장님 우리 이장님>길춘섭 이장 부리면 평촌2리 물페기농요마을
<이장님 이장님 우리 이장님>
길춘섭 이장 부리면 평촌2리 물페기농요마을
마을 주변의 자연경관과 전통문화유산을 이용한 관광인프라를 구축, 주민소득증대로 연계해야..
길춘섭이장(부리면 평촌2리)
마을 경로회관 없는 동네는 우리 마을뿐, 물페기 농요전수관 안에서 임의로 사용하고 있어...
부리면의 옛 지명인 부리 현은 백제시대에 두시 이현 또는 부시 이현이라 부르다가 신라시대(경덕왕)에 이성현으로 바뀌고 고려 명종(1173년) 때 부리현이 되어 오늘날의 지명을 갖게 되었다. 고려 충렬왕(1305년) 때에 당시 금주군에 통합되어 조선시대에는 부북면, 부서면, 부동면, 부남면을 이루다 1914년에 통폐합으로 부리면이 되었다.
부리면평촌2리 물페기농요마을전경
평촌리(坪村里)의 지리적인 위치는 부리면 소재지의 동북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금남정맥 이 함박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덕기봉을 이루고, 지삼티를 거쳐 깃대산과 서릿골 고개를 넘어 평촌리 뒷산으로 들어온다. 또 한 줄기가 선원리 옥녀봉과 성재산을 지나 물페기로 들어온다. 행정적으로는 북으로 제원면 금성리, 부리면 신촌리와 접하고, 동으로는 부리면 신촌리·예미리와 접하고, 남으로는 부리면 양곡리·예 미리와 접하며, 서로는 부리면 선원리와 접하고 있다.
귀래정
또한 평촌리는 역사적으로는 금산군 부동면과 부북면에 속했으며, 1789년『 호구 총수』에는 부동면에 평촌리(坪村里)와 부북면에는 수파리(水波里)가 나타나며 1914년 통폐합 직전에는 부동면에 상평(上坪), 하평(下坪)이 보이고 부북면에 수파리가 나타나다가 통폐합으로 평촌리(坪村里)라고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상평, 하평, 도랫말, 갓바위, 골말, 왜말, 동기, 물페기, 절골 등 여러 자연마을이 평촌리를 이루고 있다.
길춘섭이장과 마을주민들
물페기란 들말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큰 물이 들고 물살이 거칠게 흐른다 하여 물페기, 수 파리라 하였다. 평촌 2리 마을에는 노동요로 물페기 농요가 전승되어오고 있다. 인근 평촌리에는 귀암사가 있는데 눌재 양성지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눌재의 행장(行藏)을 기록한 묘비(廟碑)등이 있다. 또 마을 뒤편에는 주민들 사이에서 성터산이라고 부르는 평촌 산성이 있으며 물페기 마을과 선원리 사이에 있는 토축성으로 백제의 산성으로 추정된다. 이곳 성터 주변에서는 지금도 기왓장 파편과 토기 조각이 발견된다고 한다.
평촌 2리 물페기 마을 길춘섭(61) 이장은 이 마을 토박이로 3년째 이장을 맡고 있다. 이전에도 4년간 이장을 맡았었다. 물페기 농요 전수 마을인 평촌 2리는 현재 52가구에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농촌마을이다. 다른 마을과 특이한 점이 있다면 널따란 농경지 대분분이 하얀 비닐하우로 덮여 있다는 것이다.
금강 상류에 위치한 평촌 2리 물페기 마을은 옛날부터 알부자들이 많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을 앞쪽으로는 비옥하고 널따란 농경지가 펼쳐 저 있다. 이곳에서는 일찍이 재래식 농법에서 벗어나 과학기술영농을 도입, 전천우 시설하우스 재배를 통한 딸기, 수박, 깻잎 재배로 고소득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길춘섭 이장은 금강 상류에 위치해 있는 마을 주변에는 성터산을 비롯해 귀래정 등 수려한 자연경관과 충청남도 지정 무형문화재 16호인 물페기 농요 등 전통문화유산 전수 마을로 이를 관광 자원화해 직접적인 주민소득증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한다.
길 이장은 이곳에서 나는 특산물 딸기와 수박, 깻잎 등과 연계해 금강 상류에 위치한 귀래정과 성터산(평촌 산성) 복원, 천변 웰빙 산책로 등을 조성해 즐길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해 외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마을 전통문화유산인 물페기 농요를 통한 체험거리,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는 딸기를 비롯해 수박, 깻잎 등 농산물을 이용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마을관광인프라 구축, 주민소득증대로 연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물페기 농요는 금산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금강 여울 축제 등 중요한 행사 때마다 마을 주민 전체가 참여해 시연을 하고 있다. 물페기 농요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당시 지역 KBS 방송에서 금산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물페기 농요를 소개하면서부터다. 1987년 양훈모(당시 78세)씨와 양승환(당시 53세), 길기천(당시 80세), 길준수(당시 52세), 양동규(당시 62세)씨를 통하여 최초로 전파되었다.
이후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 10월 물페기 미을 주민들로 금산 물페기들 노래보존회를 구성, 제10회 금산인삼축제 때 정식으로 시연했다. 이를 계기로 1991년 1991년 10월 16일 전남 여수에서 개최된 제32회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충청남도 대표(평촌 2리, 평촌 1리, 금산읍)로 참가해 토신 고사, 모심는 소리, 두렁 밟기 소리, 아시매기, 긴 방아 소리, 자진방아 소리, 쌈 싸는 소리, 장원 놀이를 시연, 종합우승으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를 계기로 1992년 전승을 위하여 금산 물페기 농요보존회 주관으로 여름 평촌리 금강변에서 발표회를 가졌으며 오늘날 금강 여울 축제의 효시가 되었다. 또한 1992년 8월 17일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16호로 지정되었으며 해마다 금강 민속축제를 비롯해 금산인삼축제 등의 초청공연을 통해 금산지역 전통문화자원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외에도 평촌 2리 물페기 마을 뒤편에 있는 성터산(평촌 산성)과 금강변 재래종 소나무와 바위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귀래정이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길춘섭 이장은 성터산 둘레길 조성, 귀래정 복원과 마을 주변에 산재해 있는 수려한 자연경관과 딸기, 수박, 깻잎 등 특산물, 물페기 농요전수관 등 전통문화유산을 접목한 새로운 관광자원을 발굴해 농촌소득을 높일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3년 전 도시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귀촌해 살고 있는 박병길(74)씨는 노후생활을 위해 정착할 곳을 찾아 전국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이곳처럼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정주환경이 쾌적한 곳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마을 주민들의 인심도 넉넉해 처음 이곳에 와보고 반해서 곧바로 땅을 사서 집을 지었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는 이처럼 도시인들이 정착하기에 좋은 최적의 장소를 꼽히면서 귀농, 귀촌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다.
길춘섭 이장은 주민들이 대부분 연로하시지만 이 마을에서는 25년 전부터 시설하우스 재배로 눈을 돌리면서 농한기가 따로 없이 사시사철 농사를 짓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힘에 부쳐 농사짓기 어려운 주민 공동소득사업으로 전통한과공장을 구상하고 있다.
이장을 맡으면서 아쉬운 점은 마을 경로회관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물페기 농요전수관 건물 한쪽을 이용해 경로회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보니 너무나도 비좁다. 좀 더 널찍한 경로회관이 지어져서 마을 주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했으면 한다.
금산군 농업정책에 바람이 있다면 현재 귀농인들과 깻잎 재배시설농가에 지원이 편중되어 있는데 딸기재배농가에도 골고루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칫 잘못하면 귀농인과 원주민들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길춘섭 이장은 앞으로 우리 마을이 지금보다 좀 더 잘 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소득사업을 개발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우리 마을 주변에 산재해 있는 수려한 자연경관과 문화유적, 전통문화 등의 지역자원을 활용한 관광인프라를 구축해 도시인들이 스스로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주민들께서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