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우회 소식>내 가슴이 떨리는 그날까지...정황래 목원대학교 미술디자인대학 학장
<향우회 소식>
내 가슴이 떨리는 그날까지...
정황래 목원대학교 미술디자인대학 학장
정황래 교수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정황래 교수(54세)는 1962년 충남 금산읍 아인리에서 태어났다. 금산 동초등학교를 27회로 졸업하고 금산동중학교에 진학했다. 이후 27회로 금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정황래 교수의 부친께서 옛 금산 농업고등학교에서 근무하셨기에 그의 어린 시절의 대부분의 추억은 그곳에 서려있다. 그는 고등학교를 마친 후 목원대학교 미술교육과에 진학해 1985년 졸업했으며 바로 대학원에 진학해 2년 후에 목원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산수여행1-1, 240x120cm,화선지에 수묵담채,2013
단국대학교 대학원 조형예술학과에서 “삼각개념으로 본 산수체험 표현 연구”로 미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목원대학교 미술디자인대학 한국화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미술디자인대학 학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 중국태항산 사생활동
정황래 교수는 그동안 금산과 대전, 서울, 홍콩, 베이징 등에서 39회의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국내외 아트 페어, 초대 및 단체전 등에 300여회 정도의 전시에 참가하고 있다.
정황래 교수가 석사장교로 군복무 후 29세에 미술전공자인 아내와 대전에서 결혼했다. 그가 대학과 대학원에 다닐 때 형편이 좋지 못해 학교에서 생활을 많이 했는데 그때 후배였던 아내가 한 2년 정도 아침마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다주어서 아침을 굶지 않고 생활하였던 기억이 있다.
중국북경 지역 해외미술체험 활동
아내는 그런 자상하고 인품이 넓은 지원자였다. 그런 아내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리다. 결혼 후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아내와 함께 대전 문화동과 월평동에서 미술학원을 13년 정도 운영하면서 학생들을 지도했다.
낮에는 학원과 대학 등에 출강하며 학생들과 만나고 밤에는 학원을 작품을 제작하는 작업실로 사용하면서 작품제작과 전시 활동을 지속하였던 것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정황래 교수가 특별히 한국화를 전공한 이유는 그의 고향인 금산과 관련이 있다. 교육자셨던 아버지의 영향과 금산이라는 고향의 자연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스며들어간 그곳의 정서, 풍경은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감을 주었다.
그의 부친(고 정해천)께서는 재능이 많으셔서 무엇이든 뚝딱 만들곤 하셨다. 정황래 교수가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주시던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부친께서는 그가 그림을 공부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셨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당시 미술선생님이셨던 김배희(현재 서양화가로 활동)선생님의 지도로 미술반에서 그림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등학교재학 중에 당시는 금산에 미술전문학원이 없어서 방과 후 대전에 가서 2년 동안 미술학원을 다니며 한국화를 정명희선생님께 지도받았고 목원대학교 미술교육과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한국화 수업을 받으며 대학생활을 하고 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정황래 교수는 2005년에 목원대학교 미술디자인대학 한국화전공 교수로 임용되어 현재까지 학생들에게 우리의 전통미술인 한국화를 지도하고 있다. 교단에 있으면서 가장 보람이 있는 일은 학생들과 함께 재능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꿈을 키워나가는 일이다.
제자들이 좀 더 큰 꿈을 갖고 이를 현실화 할 수 있도록 2010년부터 자체 장학기금을 조성하여 매년 15명 내외의 장학생을 선발하여 이들과 함께 사제동행(師弟同行) 해외미술문화체험 장학프로그램을 9년째 지속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99명의 장학생들에게 해외미술체험의 여행경비를 장학금으로 지원하였다.
이러한 일들이 점차 성과를 나타내어 졸업생들이 사회의 각 분야에 진출하여 자신들의 활동을 열심히 하는 모습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
안타까운 일은 자신의 귀한 재능을 너무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끊임없이 도전하려는 마음과 자신만의 꿈을 찾아 그것이 현실이 되도록 해야 하는 준비성과 자신감 부족으로 조금만 힘들면 쉽게 포기하고 쉬워 보이는 길만 찾아 가려는 모습들을 볼 때가 가장 안타깝다.
인생길에서 슬럼프를 안 겪는 이가 어디에 있을까. 그림 그리는 일을 천직이라 생각하는 정황래 교수에게도 가끔 삶에 지쳐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여행을 다니며 그의 은사님이신 조평휘 교수님이 말씀하시던, ‘다리가 떨리면 작품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니 가슴이 떨리는 데까지 찾고 그리기를 멈추지 말라’는 말씀을 떠올린다.
행복이란 것은 정말 별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해서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이와 더불어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과 겸손한 태도로 동행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황래 교수에게 금산은 산수가 수려하고 어느 곳을 가도 자연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며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살기에 좋은 여건을 갖춘 곳이다. 이러한 천연적인 자연환경을 활용하여 지속적으로 지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많은 지역에서 그 고장의 특징을 반영하여 조성하는 문화예술 공간들이 활성화 되고 있으며 지역 미술관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또한 문화예술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예술인 마을이나 작업공간조성 등을 통해 지역 주민에게 문화예술을 가까이에서 함께 누리고 향유하는 활동들이 활성화되고 있다.
고향금산에도 지역을 홍보하고 지역출신 미술인들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전문적인 미술관이 건립되었으면 하는 마음과 문화예술인들이 금산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의 조성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