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님 이장님 우리 이장님>안노원 이장, 금산읍 중도9리 탑선이 마을
<이장님 이장님 우리 이장님>
안노원 이장, 금산읍 중도9리 탑선이 마을
삼층석탑과 석등연좌 등 고려시대 유물들이 산재해 있는 탑선이 마을 옛 절터 복원 금산의 문화유산으로 보존해야...
2013년 상수도 공사 중 발견된 석등연좌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와 협의해 금산역사박물관 야외에 전시키로 협의 중
금산읍중도9리 탑선리마을
조선시대 말기에 금산읍의 동 북쪽은 두개의 산줄기가 끝에 있고 북쪽의 지역으로 금산천과 후곤천이 흐르며 그 앞으로는 넓은 들이 마치 섬처럼 보이기 때문에 중도리라 하였다.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탑선리, 하다리, 동리, 중다리, 신도리, 흥촌리와 하도리, 중도리, 송촌리의 각 일부와 군북면의 어은리 일부를 병합하여 중도리라 하고 금산면에 편입되었다.
안노원 이장과 마을주민들
중도리 전체 면적은 1.078㎢이고 1952년 5월 24일에 설립된 금산고등학교와 1951년 8월 26일에 설립된 금산중학교 그리고 1964년 3월 1일에 설립된 금산동초등학교가 있다.동쪽으로는 신대리와 군북면 호티리와 접하며, 서쪽으로는 상리, 아인리와 접하고, 남쪽으로는 하옥리와 그리고 북쪽으로는 금성면 양전리와 접한다.조선시대에는 관아가 있는 지역의 동북쪽에 위치해서 농사를 조성하며 전원지대로 그 맥을 이어왔으나 선조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군들이 침입하여 많은 피해를 입혔던 지역이다.
탑선리마을에서는 4년전부터 매년 탑제를 지내오고 있다
중도리 북쪽에 있는 중도9리는 탑선이 또는 탑선리(塔仙里)라고도 부른다. 이 마을에는 고려시대 때 만들어진것으로 추정되는 3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26호)이 서 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마을의 형국이 행주형(行舟形)지세라 하여 그와 관련된 풍수적 대응이 마을에 전해지고 있다.본래 행주형 지세는 사람과 재물을 가득 싣고 출발하려는 배를 묶어 둔다는 의미로 인물과 재화가 풍성히 모이게 되는 현상을 가르키기 때문이다.
시원하게 뜷린 마을 소방도로
지형이 배의 형국이라 마을에 우물을 파면 배 밑창을 뚫는 격이 되어 마을이 망하거나 불길한 일이 생긴다 한다. 그래서 우물 파는 것을 금기로 하고 옛날에는 냇물을 식수로 사용하던 마을이다. 그리고 마을 가운데 있는 삼층석탑은 배의 순항에 필요한 돛대에 해당된다고 한다.
금산읍 중도9리 탑선마을은 211가구 약 45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금산읍 가운데에서도 오래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주민들의 평균 연령대는 약 65세로 면단위에 비해 비교적 젊은 층에 속한다. 주민들의 경제활동은 주로 금산의 특산물인 인삼재배와 가공 등 인삼 업에 종사하고 있다.
운영중인 행복경로당프로그램
2014년부터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안노원(55)씨는 주민들이 권유로 처음 이장을 맡게 됐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이 많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마을을 위해 헌신한다는 생각이 앞서 이장을 맡게 됐다고 말한다. 당시 탑선이 마을은 금산시내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소방도로 등 마을도로여건이 좋지 않아 낙후된 마을에 속해 있었다.
안노원 이장은 이장을 맡자마자 우선 마을 소방도로 개설에 온 힘을 쏟았다. 소방도로에 편입되는 토지사용을 위해 주민들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한편, 금산군청을 찾아다니면서 군수님과 관계공무원들을 만나 예산을 확보하는데 전력했다. 그 결과 자동차가 진입하기 어려운 좁은 마을 골목길을 넓히고 새로 뚫어 번듯한 소방도로를 개설해 주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이 마을에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CCTV가 없다. 주민들의 안전과 범죄예방을 위해 꼭 필요한 방범 CCTV가 설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하나는 예전에는 안전사고예방을 위해 독거노인가정에 설치했던 비상벨 제도가 없어져서 아쉽다며 복지사나 이장이 일일이 집을 방문할 수 없는 경우 안전사고와 독거사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한 장치라고 본다고 말했다.
안 이장은 인삼약초 업에 종사하면서 금산인삼 약령시 회장, 금산볼링협회 회장, 금산동 초운 영위 원장 등 지역사회 오너로도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마을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지역사회 활동 경험과 넓은 인맥은 행정기관과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공공사업 유치 등 마을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각종 공공사업 유치로 그동안 침체되어 있던 마을이 발전하는 모습을 눈에 보이자 주민들도 하나둘씩 마을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호응이 좋아졌다. 요즘에는 마을 경로회관에도 어르신들께서 40~50명씩 나오셔서 각종 건강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금산읍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행복경로당에 선정이 되면서 각종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해 주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있다.
요즘 안노원 이장은 경로회관에 나오시는 어르신들을 위한 소일거리를 찾고 있는 중이다. 그중 하나로 옛 어르신들께서 댕댕이덩굴을 이용해 바구니 등 생활용품을 직접 만들어 사용했던 기억을 되살려 생활용품이나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재 공예품을 구상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운동량이 많은 힘든 일을 못하시지만 어르신들이 손으로 만드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노원 이장은 지역정책에도 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그중 하나로 금산은 금산만이 갖고 있는 노하우와 지역문화유산을 토대로 천혜의 자연환경, 그리고 인삼약초시장을 연계한 웰빙관광산업도시로 발전되었으면 한다. 그중 하나로 인삼약초시장 가까이에 대형 한방병원이 생겨 어르신들께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마을 자랑거리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26호)과 개교한 지 54년 된 동초등학교가 있다.
탑선이 3층 석탑은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으로 기단은 직육면체의 돌을 2단으로 짜 놓은 후 그 위로 판도를 얹어 마무리하였고,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다른 돌로 새겨 차례대로 올려놓았다.
탑신의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는데, 현재 1층 몸돌은 세로로 기둥 조각의 폭만큼 잘린 채 옆으로 뉘어 있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위로 가볍게 들려 있으며, 밑면에는 3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1993년 11월 12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26호로 지정되었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부녀자들이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이나 사월 초파일에 이 석탑에서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는 탑재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도 매년 정월대보름날이 되면 안노원 이장과 마을 주민들은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이곳에 모여 탑재를 드리고 있다.
안노원 이장은 2013년도에는 이 마을에서 공사를 하다가 연꽃무늬 석등 받침이 발견됐다면서 당시 부여문화재연구소로 가져간 뒤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는데 금산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은 금산으로 다시 되가져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군 담당자는 2013년도에 탑선리 마을 상수도 공사를 하던 중 인부들이 석등 연좌(연꽃 무늬석 등받침)로 보이는 유물을 발견, 긴급 발견 문화재로 신고가 들어와서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에서 정밀조사를 위해 가져갔으며 발견 문화재의 경우 국가 소유로 금산군에서는 보관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기 때문에 문화재청에서 유물을 관리할 수 있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로 보낸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금산군에서는 지금 짓고 있는 금산 역사박물관으로 석등 연좌를 가져오기 위해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와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협의가 원만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일이 잘 성사되면 오는 4~5월 경 금산 역사박물관 야외전시장에서 석등 연좌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예전에 탑선이 마을에는 큰 절이 있었다고 한다. 안노원 이장은 지금도 마을 주변에서 토목공사를 하다가 가끔씩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면서 탑선리 마을 일대를 발굴 조사해서 옛 절터를 복원, 금산의 역사문화유산으로 보존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찍이 부모님을 여읜 안노원 이장은 마을 어르신들을 내 부모님처럼 섬기고 있어 훈훈함을 더해주고 있으며 주민들께서 마을일에 적극 참여하시고 협조해주셔서 감사드린다며 어르신들께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도록 사셨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