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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중앙신문

"꽃" 수필가 박춘우

by JSS열린세상 2018. 6. 27.

 

수필가 박춘우

 

5월은 장미의 계절이다. 올 봄에 심은 넝쿨 장미가 울타리를 타고 올라가더니 연신 빨간 꽃을 피우고 있다. 농사를 짓는답시고 구술 땀을 흘리다가 장미를 보면 피로가 싹 가시고 옛날 집 울타리에 핀 빨간 해당화가 생각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봄이 오면 연분홍색 살구꽃은 재간 초가지붕 위에서 화사함을 뽐냈다. 복송나무 꽃은 양지바른 텃밭 한 모퉁이에서 기품 있게 분홍색의 고상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뒷마당 옹달샘 주변에서도 늙은 앵두나무가 소리 없이 하얀 꽃을 피워댔다.


날이 더워지면 앞마당 감나무 노란 감꽃이 녹색 감잎 사이에서 은근슬쩍 피기 시작했다. 감꽃이 뚝뚝 떨어지면 깨끗한 녀석들을 골라 입으로 후후 불어 흙을 털어내고 먹거나 실에 꿰어 염주처럼 목에 걸고 다녔다. 뒷동산 밤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밤나무 숲은 눈이 내린 듯 허연 했다. 달빛이 교교하게 비치는 밤에 살랑살랑 바람이 불면 밤꽃들은 비릿한 향을 내 품곤 했었다

 

여름이 되면 아침마다 마당 한구석 가죽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보랏빛 나팔꽃이 반갑게 아침 인사를 했다. 담장 위에선 샛노란 호박꽃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호박벌 손님을 맞이하느라 바빴다.


가장 한국적이고 서민적인 꽃 키다리 노랑꽃이 토담을 기웃기웃 넘겨다보면서 흔들거렸다. 꽃이 여러 날에 걸쳐 번갈아 피고 져서 거의 백일 동안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百日紅이라고 이름 붙여진 백일홍은 그 이름처럼 주홍색 꽃을 여름부터 가을 내내 쉼 없이 피워댔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이 오면, 여름부터 피기 시작했던 닭 볏을 닮은 맨드라미가 텃밭 한 모퉁이를 붉게 물들였다. 우리는 시든 맨드라미를 문질러 까만 씨알맹이를 털어내며 노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작은 씨 알맹이가 눈에 들어가면 큰일 난다.”라고 말씀하시며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걱정스레 우리를 지켜보곤 하였다. 장독대에 뱀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고 어머니는 장독대 앞에 독한 내 나는 서광을 심었다.


꽃은 주황색이나 노란색으로 엄청 예뻤으나 그놈의 고약한 냄새 때문에 우리는 가까이 가기를 싫어했다. 텃밭 구석에는 서너 그루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 돌고 있었다. 가을 햇빛에 까맣게 익은 통통한 씨알맹이는 우리 주전부리로 최고였다.


누나는 꽃에 대한 욕심이 유달리 많았다. 평소에 누구네 집 장독대 옆에 예쁜 꽃이 있는 것을 눈여겨보았다가 봄비가 촉촉이 대지를 적시는 날, 호미를 들고 달려가 기어이 모종을 얻어다 우리 집 화단에 심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먹고 살기가 무척 어려웠던 그 시절에는 꽃밭 대신에 상치나 시금치 등 채소를 심을 텃밭이 필요했을 것이다. 또 바쁜 농사일을 하느라 꽃에 손이 가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런데도 시골집 공터 여기저기에 사시사철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피고 또 피었다. 아마도 시집살이에 지친 아낙네들이 친정집 생각이 날 때마다 처녀 때 키우던 꽃을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삼으려 했을 지도 모른다. 몸이 불편한 친정어머니 생각에, 돈 벌려고 집 나간 동생 생각에 흐르는 눈물을 옷고름에 콕콕 찍어가며.


시골집 꽃들은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요란하지도 않았지만, 소박하면서도 단아함이 있었고 꽃 하나하나에 민초들의 애환과 추억이 깃들어 있었다. 그런 시골 꽃밭들이 창고나 농기계 주차장에 밀려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니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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