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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중앙신문

<칼럼> 꽃과 사람 -나창호 수필가, 前 부여군 부군수

by JSS열린세상 2019. 7. 25.

꽃과 사람

나창호 수필가.前 부여부군수 


세상에 꽃이 없다면 사람들의 삶이 무척 삭막할 것이다. 꽃은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여유를 갖게 하며 정서를 아름답게 한다. 기쁜 마음에는 기쁨을 더하고, 슬픈 마음에는 슬픔을 덜게 한다. 생일이나 졸업식 같은 날에는 기쁨의 선물로 쓰이고, 누군가가 세상을 이별하는 상가에는 슬픔을 달래는 조화로 쓰인다.


세상에는 꽃의 종류도 참 많다. 이름 모를 연약한 풀꽃이 있는가 하면, 긴 넝쿨을 뻗으며 피는 꽃이 있고, 키가 아주 작거나 오히려 아주 높은 나무에 피는 꽃도 있다. 초봄에 잔설을 뚫고 피는 꽃이 있는가 하면, 한 여름 뜨거운 햇볕을 받고 피는 꽃이 있고, 늦가을에 찬바람 맞으며 피는 꽃이 있다.


색깔도 많다. 흰 꽃, 노란 꽃, 빨간 꽃, 주황 꽃, 분홍 꽃, 보라색 등등 각양각색으로 많다. 진하고 화려한 색상의 꽃이 있는가 하면, 수수 담백한 색의 청초한 꽃도 있다.


꽃에는 또 향기가 있는 꽃이 있고, 향기가 없는 꽃이 있다. 꽃이 크고 보기 좋아도 향기가 없는 꽃이 있는가 하면, 꽃은 볼품없이 작아도 향기가 아주 좋은 꽃이 있다. 나는 여기서 뚱딴지같지만 꽃과 사람을 비교해본다.


사람 중에는 외양은 별로여도 인품이 우러나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허우대는 그럴 듯한데 인품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자기주장만을 옳다고 하며 안하무인으로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덜된 사람이다. 얄팍한 지식으로 마치 세상의 이치와 물리를 깨닫기라도 한 듯, 세상사를 다 아는 양 떠벌리는 사람도 있다. 마찬가지 부류이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말이 험한데다 비논리적이어서 불쾌하다. 인품을 찾기 힘든 사람들이다. 꽃으로 치면 향기가 없는 꽃이다.


반면에 인품이 된 사람은 많은 지식과 소양을 갖추었어도 말이 점잖고 뽐내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말이 조용하면서도 무게와 설득력이 있고 기품이 있다. 저절로 존경심이 든다. 이런 사람은 은은한 향기를 품은 꽃과 같다.

 

또 한편으로 외양을 꾸미지 않아도 기품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시때때로 옷을 갈아입고 멋을 부려도 천박함이 드러나는 사람이 있다. 언행마저 그러하면 아주 가관이다. 이런 사람은 그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존경을 받기가 어렵다. 오히려 아낙네들의 입 살에 오르내리거나, 남정네 술자리의 안주감이 되기 쉽다. 꽃으로 치자면 향기는커녕 역한 냄새를 풍기는 꽃이다.


열대 숲에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시체꽃이 있다는데, 아마도 그런 꽃이 아닐까 싶다.


반면에 꾸미지 않아도 고상한 사람이 있다. 멋을 부리지 않아도 멋진 사람이다. 인품이 훌륭하고 겸손한 사람이다. 멀리서도 칭송을 받는 그런 사람이다. ‘꽃향기는 천리를 가고(花香千里),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人香萬里).’고 하지 않는가. 이런 사람은 사후에도 그 이름이 잊히지 않고 장삼이사 필부필부에게까지 오래도록 회자된다. 바로 청아한 향을 은은하게 풍기는 난초꽃과 같은 사람이다.


나는 좋은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닮고 싶지만 조족지혈이다. 학식은 고사하고 인품도 어림없다. 어느 때는 인생을 헛살았다는 자책을 하기도 하지만, 세월은 항상 정확하고 냉엄하다. 한번 흘러간 시간은 결코 되돌리는 일이 없다. 학창시절에 공부를 더 열심히 했어야 하는데..., 책을 더 읽었어야 하는데..., 그 때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아무리 뉘우치고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학식과 인품을 하루아침에 쌓고 닦을 수는 없는 일이다. ‘소년은 늙기 쉽고 배움을 이루기는 어렵다.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미라(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세월의 빠름을 경계하는 명언이 아닐 수 없다.


꽃 얘기를 하다가 잠시 샛길로 빠졌다. 다시 꽃 얘기를 해본다. 이 세상에 꽃이 없다면 산도, 들도, 길거리도, 집안도 모두 허전할 것이다. 아름다움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꽃이 없으면 나비도 없을 테니, ‘꽃과 같이 곱게, 나비 같이 춤추는어린애도 없을 것이다. 꽃이 있어야 사람들의 눈과 마음이 즐겁고, 예쁨과 아름다움을 알게 될 것 아닌가. 또 꽃을 가꾸다보면 꽃의 아름다움에 빠지고, 자연히 아름다운 마음도 생겨날 것이다. 따라서 꽃은 인간생활에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꽃에게는 인간이 필요 없을지 모르지만, 사람에겐 꽃이 꼭 필요하다.


나는 기왕이면 향기 없는 꽃보다 향기 있는 꽃이 더 좋다. 간혹 꽃은 좋은데 향기가 없음을 아쉬워 할 때가 있다. 화사하게 핀 주황색 군자란에 청초한 난초향이 풍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봄날 노랗게 핀 개나리꽃에서 미선나무 꽃향기가 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화사한 벚꽃에서 매화향기가 풍기면 얼마나 좋을까, 이팝나무 꽃에서 아카시 꽃향기가 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 볼 때가 있다. 향기 나는 꽃이 많으면 꽃과 같이 향기 나는 사람이 많아지지 않을까하는 실없는 생각이다.


또 나는 가로수에는 왜 꽃향기 나는 나무가 없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하다못해 아카시 꽃나무 구간이라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얀 꽃, 빨간 꽃, 노란 꽃이 피는 아카시 나무를 번갈아 심으면 보기도 좋고 오월의 밤거리에 꽃향기가 넘쳐나지 않을까?


가로수로 느티나무도 심는데 아카시 나무라고 못 심을 리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만약이라도 그런 거리가 생긴다면 나는 그 거리를 아카시 꽃이 폈다가 질 때까지 늘 찾을 것이다. 사람과 꽃이 어울리는 향기 나는 거리를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언젠가 그런 거리가 꼭 생겼으면 좋겠다. 꽃과 사람, 일상에서 늘 어울려 살아야 한다. 사람도 꽃같이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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