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이 낳은 걸출한 정치인 옥계 유진산 선생
항상 대국을 보고 최악의 상황에도 유머감각을 잊지 않는 정치 거목
옥계(玉溪) 유진산[柳珍山] 선생은 1905년 10월 18일 충남 금산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만세 벽보사건으로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자퇴했고, 이후 보성중학교로 편입하여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경학부에 입학하여 3년간 수학하다가 중퇴했다.
1942년 만주로 건너가 충칭[重慶] 임시정부의 연락원으로 활동하다가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본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1945년 8·15해방이 되자 정계에 투신하여 주로 청년조직의 결성과 청년운동의 활성화에 전력했다.
옥계 유진산 선생
1946년 4월 9일 좌익청년단체 조선민주청년동맹에 대항한 우익청년단체 대한민주청년동맹을 조직해 회장으로 활동했다. 김두한이 감찰부장으로 있던 이 단체는 미군정에 의해 폭력단체로 해산명령을 받자 1947년 '청년조선총동맹'이라는 조직으로 개명하여 계속 반공활동을 전개했다.
고 옥계 유진산선영에 마련된 비문
이후 이승만의 청년단체통합 지시로 1948년 12월 통합된 '대한청년단'에서 최고지도위원으로 활동했다. 1951년 민주국민당 총무부장을 지내고, 1954년 제3대 민의원 선거에 고향인 금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었으며, 1956년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을 지냈다.
고 유진산 선생 생가
1958년 제4대 민의원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재선되었고, 11월 원내총무가 되었다. 1960년 제5대 민의원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4·19혁명으로 민주당정권이 들어선 이후 민주당이 신·구파로 분열하자 신익희·조병옥 등이 이끄는 구파 동지회에 가입했다.
1961년 2월 민주당 구파가 신민당을 창당하자 동당의 간사를 맡았다. 1963년 신민당 중앙상무위원을 지내다가, 김병로와 윤보선 등이 주축이 되어 민정당을 결성하자 민정당의 중앙상무위원 겸 기획위원회 의장으로 선임되었다.
같은 해 민정당 전국구 후보로 제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마닐라에서 개최된 아시아 민족반공대회에 한국측 수석대표로 참가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영등포 갑구, 신민당)되었고 아울러 신민당 수석부총재를 지냈다.
1970년 신민당 총재가 되었다가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입후보 공천문제로 총재직을 일시 사퇴했으나, 1973년 5월 다시 총재직에 복귀했다. 1971, 1973년 제8·9대 국회의원에 계속 당선되어 6선 의원이 되었으며, 1974년 결장암(結腸癌)으로 죽었다. 1974년 5월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고, 저서는 〈농민독본〉이 있다.
근대사에서 역할에 비해 가장 야박한 평가를 받는 인물 중 하나가 정치인 유진산이다. 그는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으로 만석집 재산을 날렸고 해방시기에는 백색테러로 적색테러에 맞섰으며 자유당정권 하에서는 반독재투쟁에 나섰다.
유진산이 비판받는 부분은 박정희 정권시기인데 사실 60년대 가장 많은 일을 한 사람은 진산이었다. 5.16 때는 일본에 방문 중인 정치인 중에서 가장 먼저 귀국하여 수감되었고 64년 대통령 선거에서 책략으로 민주당을 주저앉혀 윤보선 단일후보를 만들어내어 박정희와 박빙의 승부를 이루었다.
60년대 중반에는 신민당으로의 야당통합을 지휘했고 71년에는 당수로써 후보단일화하도록 압박을 가해 김대중 단일화에 공헌하였다.
생전에 그는 정치가 안정돼야 경제가 성장할 수 있으며 온 국민이 평온하게 살 수 있다는 지론을 갖고 투쟁보다는 대화, 배척보다는 상생의 정치를 항상 강조해왔다. 항상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했으며 좌우 계파를 가르지 않고 중립을 지키고 야당 분열을 막기 위해 자신의 영달을 포기하는 등 국가발전과 정치적 화합을 위해 노력해왔다.
박정희가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했고 중정이 가장 상대하기 편한 정치인으로 손꼽혔던 진산, 항상 대국을 보고 실리를 취했으며 최악의 상황속에서도 유머감각을 잊지 않는 정치 거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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