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장성수열린세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금산중앙신문

<<역사의 땅 금산>> 1200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금산의 고찰 태고사

by JSS열린세상 2017. 8. 27.

<<역사의 땅 금산>>
1200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금산의 고찰 태고사
한 마리의 용이 둥지를 감싸듯 고산준봉으로 둘러싸인 고찰, 한 때 대웅전 건물만 72칸...


금산태고사전경

태고사는 신라시대 원효(元曉)가 창건하여 조선 중기 진묵(震默)의 재건으로 지어진 사찰로 현재로는 금산군 진산면 행정리에 속해있는 대둔산에 있는 절이다. 대둔산은 금산군 진산면, 논산시 양촌면, 완주군 운주면 등 3개 시도에 걸쳐있는 산으로 전망 좋기로 유명하다. 이 산에 위치하고 있는 태고사는 대둔산 최고봉 마천대 다음 제2봉우리 낙조대 아래 동북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정상은 해발고도 859m이며 그중 해발 660m에 위치한 금산의 천년 고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 태고사는 우암 송시열(宋時烈) 선생이 공부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선생의 자취는 아직도 이 절에 선명히 남아있다. 절 아래 거대한 바위 사이로 간신히 한 사람 지날 정도의 틈이 있는데 이 바위에 한자로 ‘석문(石門)’이라고 글을 써서 새겨 넣었다. 이를 두고 우암 선생은 석문이라 했고 지금까지 이 바위틈이 태고사의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다. 또한 원효대사가 창건한 이 절은 고려시대 태고 화상(太古和尙)이 중창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진묵대사가 재건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석문

그 이후 태고사는 6·25 때에 소실되었던 것을 1974년 주지스님인 김도천(金道川)이 30년 동안 이 절에 머무르면서 대웅전·무량수전(無量壽殿)·관음전, 선방 등을 지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중심에 모시고 그 좌우에 문수(文殊), 보현보살(普賢菩薩)을 모신 건물이다. 이 절은 사세 수려한 대둔산 자락에서 한 마리의 용이 둥지를 감싸듯 고산준봉으로 둘러싸인 고찰로 한 때 대웅전은 1,200년의 역사를 간직한 72칸의 웅장한 건물이었다고 한다.

 
이 절을 다시 재건한 도천스님은 1910년 평안북도 철산에서 나셔서 19세에 “도를 이루겠다”며 금강산 마하연에서 수월스님의 제자인 신묵언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0여 년간 금강산 마하연 신계사 묘향산 유점사 법왕사 등에서 수행해 온 스님은 전쟁으로 금강산이 북한의 수중에 들어가자 남한으로 내려왔다. 범어사와 내원암 칠불암 해인사 선방을 거쳐 금강산과 산세가 비슷한 대둔사 태고사에서 수행을 했다.


금산 태고사

한국전쟁 때 태고사에 빨치산이 들어오자 묵언을 하고 7일 단식을 하다 마지막으로 태고사에서 나왔다. 스님은 ‘난리통에 죽을 뻔했는데 다시 살게 된 것은 순전히 부처님 덕분이고 그 은혜를 갚는 일이 제대로 도량을 정비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6·25 전쟁으로 불에 타 아무것도 없는 태고사로 62년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태고사 터에 움막을 하나 짓고 나물죽을 끓여 먹으며 40년간 두문불출 불사를 해왔다고 알려져 있다.


이곳의 절터는 전국 12 승지의 하나로서, 원효가 이곳을 발견하고 너무나 기뻐서 3일 동안 춤을 추었다고 하며, 진 묵대사 역시 태고사를 보고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자리하여 산을 베개 삼고 누워 있으니 달은 촛불, 구름은 병풍, 강물은 술동이로다'라고 했다는 말이 실감 나도록, 이 곳의 절경은 더없이 아름답다.

 

한용운(韓龍雲)이 “대둔산 태고사를 보지 않고 천하의 승지(勝地)를 논하지 말라.”라고 할 만큼 절경이 빼어난 곳이다. 또한, 이 절의 영험 설화로는 전단 향나무로 조성된 삼존불상을 개금(改金)할 때 갑자기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쏟아져서 금칠을 말끔히 씻어 내렸다는 전설과 잃어버린 태고사 불궤에 얽힌 전설 등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의 태고사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태고사를 끼고 숲 속을 가로질러 낙조에 올라 대둔산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