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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중앙신문

<이장님 이장님 우리 이장님>정병철 이장, 남일면 음대리-효자마을, 소론파 지도자 명재 윤증 선생의 체취가 깃든 유림의 고장

by JSS열린세상 2018. 1. 30.

이장님 이장님 우리 이장님-정병철 이장, 남일면 음대리
효자마을, 소론파 지도자 명재 윤증 선생의 체취가 깃든 유림의 고장


남일면음대리마을전경


남일면은 본래 금산군의 남쪽이 되므로 남일면이라 하였으며, 1914년 군면 통폐합에 따라 황풍, 마장, 상동, 초현, 덕천, 신정, 신동, 신천, 음대 등 9개 리로 개편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병철이장과 마을어르신들


또한 남일면은 유림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일찍이 고려시대 말 공민왕을 옹립했던 율정 윤택 선생은 벼슬을 사양하고 남일면 초현리에 낙향하여 후학을 기르는 일에 몰두하였다. 선생은 고려 충숙왕 4년(1317)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치 던 중 충목왕이 죽자 이승로 등과 더불어 강릉대군(후일 공민왕)을 옹립하려 하였으나 충정왕이 등극하자 일시 광양감무로 좌천되었다가, 1351년 공민왕이 즉위하자 밀직사에 들어가 제학이 되었고, 개성 부윤 등을 지냈다.


6.25전쟁때 싸우다가 전사한 호국영령을 기리는 충혼탑


그 뒤 1361년 정당문학 이 더하여졌고, 1363년 첨의찬성사에 이르렀으나 사양하고 지금의 초현리로 낙향하였다. 이후 선생은 후학을 기르는 일에 전념하여 많은 제자를 배출하여 남일면이 유향이 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였다.

 

금산읍에서 용담댐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는 남일면 음대리(陰大里)는 136가구에 240명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주민 대부분이 인삼농사와 깻잎시설재배 등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면적은 4.1㎢이다.


다른 마을과는 달리 봉황천을 경계로 신천리와 경계를 이루고, 신정천 을 경계로 하여 신정리와 덕천리와 경계를 하고 있어 큰 물줄기가 만나는 지역으로 넓은 들이 매우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행정적으로는 북으로 남일면 신천리·덕천리와 접하고, 동으로는 덕천리·신정리와 접하고, 남으로는 남일면 신동리와 접하고, 서로는 남이면 구석리와 남일면 신천리와 접하고 있다.

음대리는 신정천과 봉황천이 합쳐지는 곳에 어머니의 자궁터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일찍이 마을 어른들은 파출소를 이곳에 유치시키고 남일중학교, 금일 초등학교, 우체국을 유치하여 마을 발전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이곳 유서 깊은 마을에서 6년째 동네 일을 맡고 있는 정병철(61) 이장은 이 곳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토박이다. 음대리는 신정천을 중심으로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어 예전부터 인삼재배가 발달했다. 현재도 주민 대부분이 인삼농사와 시설하우스 깻잎 재배가 주를 이룬다.


음대리 세효각


음대리는 다른 마을과는 달리 행정기관이 초현리와 음대리 양쪽으로 각각 나뉘어 있다. 면사무소와 단위 농협, 소방대 등은 초현리에 있고 우체국과 파출소 등은 음대리에 있다. 김원규 전 노인회장의 말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의 훈도시(일본의 성인 남성이 입는 전통 속옷)를 입고 밖에 나돌아 다니는 등 풍기문란 때문에 보다 못한 주민들이 관공서가 마을에 있는 것을 원치 않아서 그렇게 됐다고 한다.


마을회관 광장바닥에 LED전구를 설치했다


이 마을에는 효자 김계희 선생을 기리는 사당으로 세효각과, 소론파의 지도자 명재 윤증이 개설하였던 산천재 서원지로 서원 터에 "명재윤선생사우지허지"라는 비석과 우물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또한 6.25 전쟁 직후 살인, 방화, 약탈을 일삼던 공산당을 소탕작전 중 전사한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충혼탑(忠魂塔)이 세워져 있다.

 

남일면음대리경로회관


특히 세효각(世孝閣)은 조선시대 철종 때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효행이 뛰어났으며 자라면서부터 부모님에게 효도는 말할 것도 없고 돌아간 신 후에도 묘소 앞에서 막을 짓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한 김계희를 비롯해 아들과 손자 삼대에 걸친 효행을 길이 빛내기 위해서 세운 사당이다. 1937년에 세웠으며 매년 10월 20일에 제사를 지낸다.


이와 함께 소론파 명재 윤증 선생께서 산천재 서원을 세워 소론파의 근거를 마련하였고 윤증 선생이 세상을 뜨자 선생님의 영정을 서원에 걸고 위패를 봉안하여 그 학풍이 130년간 계승한 유림의 고장이다.


이 마을엔 옛 남일중학교가 학생수 감소로 폐교되면서 금산군에서 매입해 2013년 인조잔디축구장, 풋살장, 전천후 족구장 등의 시설을 갖춘 남부체육문화센터가 있어 주민들뿐만이 아니라 금산군 체육동호인들이 크고 작은 경기를 하는 등 자주 이용하고 있다.


그동안 이 마을은 용담댐을 지척에 두고서도 지금까지 마을 공동 지하수를 이용했으나 올해부터는 광역상수도 배관공사를 하고 있어 앞으로 집집마다가 광역상수도가 들어와 먹는 물 문제를 해결하게 됐다.


이 뿐만 아니라 남일면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으로 마을 광장에 다목적문화센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현재에도 주민자치프로그램으로 노래교실, 맷돌체조(건강체조), 댄스, 요가, 이혈요법 등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농한기에는 보통 40~50여 명의 마을 어르신들이 회관에 모여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에 참여해 건강한 여가시간을 즐기며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


여름철에는 더위를 피해 마을 어르신들이 야간에 건강체조 등을 하면서 잘 보일 수 있도록 태양광 LED유도전구를 광장바닥에 설치했다. 이와 함께 행복경로당에서는 어르신들을 위한 공동취사를 하고 있다. 특히 음대리는 정병철 이장을 중심으로 마을 청년회와 부녀회가 활성화되어 있어서 크고 작은 마을행사에 청년회와 부녀회가 앞장서서 봉사하고 있어 마을 어르신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또 마을 한가운데 있는 충혼탑에서 매년 현충일 날을 기해서 6.25 직후 전사한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행사를 해오고 있다. 이날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음식을 나누고 주민들의 화합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에는 공동쓰레기장이 상당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공동쓰레기장을 넓게 만든 이유에 대해 정병철 이장에게 물어보니 예전에 마을 쓰레기장이 없었을 때는 도로 곳곳에 생활쓰레기가 널려 있어서 미관상 너무 보기가 안 좋아 아주 넓게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마을이 깨끗해졌다고...


한편 주민들의 숙원사업이 있다. 이 마을에는 실내 게이트볼구장이 없다. 면사무소가 있는 초현리에는 실내 게이트볼구장이 있지만 매일 거기까지 가기에는 교통편이 불편하다. 음대리 주민 240여 명중 평균 연령이 70대이다 보니 몸을 많이 쓰는 격한 운동은 하기가 어렵다.


음대리에도 실내 게이트볼장이 하나쯤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변에 인도가 없어 매우 위험하다. 몇 년 전 도로를 횡단하다가 차에 치이는 사망사고도 발생했었다.


옛날 도로에 겨우 아스팔트 포장을 했을 뿐 주택과 도로가 너무 바짝 붙어 있어서 인도를 확보할만한 여유공간이 없다. 주민들의 협조와 이해가 있어야만 도로를 좀 더 넓힐 수가 있다. 또 이구동성 주민불편사항으로는 시내버스 이용 불편을 꼽았다.


남부체육센터


시내버스 오전 첫차가 음대리 마을을 경유해 신동 2리(사귀소)를 거쳐 신정2리와 덕천3리(평대리)로 해서 금산읍으로 돌아 들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시내버스 오전 첫차가 음대리를 경유할 때 멀리 돌아가더라도 이용하려는 주민들에게는 탑승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병철 이장은 "마을 어르신들께서 생활하시면서 불편한 것은 없는지 신경 쓰다고는 하지만 부족한 것이 많다. 그러나 그 부족한 부분을 청년회와 부녀회를 비롯해 마을 어르신들께서 도와주시고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셔서 이장으로서 너무도 고맙다"고 말한다.


박용목(77) 노인회장은 "젊은 이장이 어른들 공경할 줄 알고 적극으로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마을이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마을 주민들도 고맙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이장을 중심으로 마을일을 추진하면서 어려움이 없도록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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