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이재 의료폐기물 소각장, 이쯤에서 접기를 바란다.
(수필가, 전 부여군 부군수 나창호)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흰 눈이 내리고 날씨마저 추워 올해는 봄이 많이 늦는가보다 생각했는데 어느덧 봄날이 온 것 같다. 햇볕 잘 드는 아파트 베란다 군자란 화분에 꽃대 두 대가 올라와 주황색 꽃이 화사하다. 달큼한 향내를 자랑하는 나도풍란도 둥근 잎 밑에 꽃대를 살며시 내밀고 있다. 머잖아 좋은 향기를 선사할 것 같아 반갑다.
집안뿐만 아니라 바깥 날씨도 좋다. 양지바른 아파트 화단에는 노란 산수유 꽃이 흐뭇하게 피었고, 울타리에는 넝쿨장미가 수줍게 새싹들을 틔우고 있다.
더구나 오늘은 봄을 재촉이라도 하듯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거친 바람도 없고 빗줄기도 억세지 않다. 조용히 부드럽게 내린다. 아이 살결 같은 비다.
그동안 봄 가뭄이 심했었는데 그야말로 약비가 아닐 수 없다. 식물이고 동물이고 간에 가뭄에는 비가 와야 생기가 난다. 오늘의 비가 메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시고 나면, 봄빛은 더 완연할 게 틀림없다. 풀들이 힘차게 솟아오르고 나뭇잎들은 기지개를 켜며 푸른 생기를 되찾을 것이다. 이 비는 또 게으른 농부들도 농토로 나가게 할 것이다. 감자 심으러 나가고, 완두콩도 심으러 나가고, 약초도 심으러 나갈 것이다. ‘비 오면 심지’하는 핑계거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금산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 안부 겸해서 시골도 비가 많이 오는지 묻는 전화를 드리니 “비 제법 온다.”하시면서, 대뜸 “내부리 마늘밭 덮개 벗겼냐?”하신다. 아직 안 벗겼다고 하니 빨리 벗겨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며칠 전 밭에 들렸을 때만 해도 마늘 싹이 삐죽삐죽 몇 개만 올라오고 있었는데, 그 새 싹들이 많이 올라온 모양이라 생각됐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마늘 싹이 하루가 다르게 자랄 게 분명하다. 이 번 주말에는 만사 제쳐놓고 마늘밭 비닐덮개를 걷고, 일흔이재를 넘어 시골집에도 다녀와야겠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사람이나 모두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 속에서 살다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다. 자연의 이치고 숙명이다. 따라서 자연은 건강해야 한다. 자연이 병들면 동·식물이 병들고 사람도 병든다. 문득 일흔이재를 생각하니 오갈 때마다 보는 의료폐기물 소각장 예정지가 떠오른다. 마음이 무겁고 어두워진다.
왜 이리 좋은 자연환경을 망치려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흔이재를 오가는 길손들이 바람을 쐬고 한숨 돌릴 수 있는 작은 쉼터를 조성하지는 못할망정, 토양과 공기와 수질까지도 오염시킬 수 있는 혐오시설을 굳이 이 곳에 설치하려는 의도가 이해되지 않는다. 업자 측에 이 시설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정도로 삶이 궁핍하고 다급한지를 묻고 싶다.
산 좋고 물 맑으며 공기가 청정해 예로부터 금수강산이라 불리는 고장이 우리 금산 아닌가. 하지만 아무리 자연조건이 좋다 해도 환경오염시설이 있는 지역으로 소문이 나면 그 피해는 예측을 불허할 것이다. 벌써부터 바리실 사과 매출량이 줄었다는 말까지 들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합법적이면 무슨 방법으로 돈을 벌던, 무슨 사업을 하던 간섭할 일이 아니라고 할지 모른다. 그래서 이 건도 행정소송을 제기해 법적 다툼을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만약이지만) 아무리 합법적이라 해도 지역적 여건을 감안하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이 있다. 법이 아무리 좋아도 도덕보다 우선일 수 없고, 도덕보다 선할 수는 없다는 말 아니겠는가. 필자는 솔직히 이 사업을 추진하는 업주와 일면식도 없고 알기를 바라지도 않지만, 이쯤에서 일흔이재 의료폐기물 소각장 설치사업을 접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함께 웃으며 살아갈 고향이 아닌가.
지금쯤에서 접어준다면 어려운 결단을 내려준데 대해 군민들로부터 큰 환호와 칭송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동안 사업을 반대하는 주민들-금산군 이장단이 모두 참여한다고 들었다-이나, 설치반대비대위 측과의 어떤 앙금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용단을 내려준다면 그러한 불편함은 서로 간의 이해와 용서로 봄날 눈 녹듯 풀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끝내 법정다툼을 계속한다면 결코 앞날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 예측된다. 아주 기초단계인 지구단위변경허용 여부를 놓고 대법원까지 다툰다면 많은 시일이 걸리고,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설령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는다해도 앞으로의 일들이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이라 전망된다.
오는 6월의 지방선거를 통해 새로 뽑힌 군수가 누구일지 모르지만, 그 누구라도 결코 호의적일 수는 없을 것이고, 건축허가 건에서부터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또, 지금은 그저 관망하고 있지만 마을 앞을 의료폐기물 적재차량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사태가 현실화된다면 직·간접적인 피해를 보는 마을주민들이나 농가들이 실력행사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금산군민들로부터 신뢰를 잃는 일이라 할 것이다. 주민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기업이나 사업가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군사력도 식량도 백성들의 신뢰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나라마저도 백성들의 믿음이 없으면 바로서지 못한다고 한 말씀을 새겨봐야 한다.
한낱 필부에 불과한 필자는 주제넘을지 모르지만 거듭 촉구한다. 아름다운 금산의 좋은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생태환경을 오염시키는 일이 없도록 이쯤에서 사업을 접어주었으면 좋겠다. 필자도 일흔이재를 넘을 때 마다 느끼는 마음속 먹구름을 걷고, 가을하늘처럼 맑은 기분이 되고 싶다. 이는 필자만의 마음이 아니라 온 금산군민들의 마음일 수도 있다. 인명은 무한한 게 아니고 유한하며, 인생사도 재력도 과유불급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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