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한 농가 출신 소년, 뉴욕 재래시장 개척해 글로벌 유통기업 성장
- “금산 인삼 세계화가 마지막 꿈”…자연사박물관·쥬라기공원 구상도
- 미국 정치권도 관심…트럼프 측 인사 “금산인삼 적극 알리겠다”
“가난은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꿈까지 가난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2026년 5월 11일, 금산중앙신문 영상제작팀은 금산 출신 재미사업가인 길준형 회장을 취재하기 위해 미국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제작팀은 14시간이 넘는 긴 비행으로 고된 시간을 보냈지만, 단돈 75달러를 들고 미국에 건너가 숱한 역경 끝에 성공 신화를 일군 길 회장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설렘도 컸다.
제작팀은 12일 새벽 뉴욕 케네디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길 회장이 직접 보낸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고, 제작팀은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곧바로 촬영 일정에 들어갔다.

처음 만난 길준형 회장은 성공한 기업인의 엄격한 모습보다 따뜻하고 소탈한 분위기가 먼저 느껴졌다. 권위적인 인상 대신 이웃집 형님 같은 친근함으로 대화를 이끌었고,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시작됐다.
충남 금산 출신 재미교포 기업인 길준형(1957년생)의 삶은 한국 현대 이민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1985년, 주머니 속 75달러만 들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청년은 이제 미국 유통업계에서 연매출 1500억~1600억 원 규모의 기업을 이끄는 사업가가 됐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여전히 고향 금산과 금산 인삼을 향해 있다.

길 회장이 미국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현실은 냉혹했다. 영어도, 연고도 없었다. 트럭 운전을 하고 새벽마다 파를 다듬었다. 하루 종일 일해도 생활은 빠듯했다. 외로움은 견디기 어려웠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 대신 버티는 길을 택했다.
길 회장은 “75달러를 가지고 미국에 왔다는 건 사실상 빈손이나 다름없었다”며 “남보다 백배, 천배 노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현장을 읽는 감각과 집요한 실행력이었다. 그는 미국 시장 한복판에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한국식 재래시장 모델을 꺼내 들었다. 벽으로 막혀 있던 매장 구조를 허물고 채소와 과일, 생선과 식자재를 거리로 꺼내 놓았다. 미국에서는 낯선 풍경이었다.
뉴욕시는 곧바로 제동을 걸었다. 노점과 외부 진열 문제를 두고 시 당국과 충돌이 이어졌다. 단속이 반복됐고 물건을 압수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길 회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3년 넘게 뉴욕시와 싸운 끝에 합법적 허가를 받아냈다. 지금 뉴욕 한인 상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한국형 오픈마켓의 시작이었다.

그는 “미국에는 재래시장 문화가 없었다”며 “사람들이 직접 보고 고르고 흥정하는 한국식 시장을 만들면 반드시 통할 것이라 확신했다”고 말했다.
당시 작은 점포에서 시작한 사업은 현재 미국 내 15개 이상의 오픈마켓과 유통망으로 성장했다. 직원 수만 450여 명에 달한다. 직원 상당수는 10년 이상 장기 근속자다. 가장 오래 근무한 직원은 35년째 회사를 지키고 있다.

길 회장은 성공 비결로 ‘사람’을 꼽았다. 그는 직원 채용 때 능력보다 인성을 먼저 본다. “돈보다 사람을 먼저 벌어야 한다”는 철학 때문이다.
길 회장은 “일은 가르치면 되지만 사람 됨됨이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며 “신뢰를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직과 인간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사업이 안정기에 접어든 뒤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고향으로 향했다. 금산에서 인삼 농사를 짓던 아버지와 인삼 보따리를 들고 전국을 돌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부모는 인삼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고 자녀 교육비를 마련했다.
그는 결국 금산 인삼의 미국 진출에 뛰어들었다.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고향을 위한 사명에 가까웠다.
현재 리버티그룹은 미국 내 롯데마트 등 대형 유통망 수십 곳에 금산 홍삼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뉴욕 동부권을 넘어 플로리다와 중남부 지역까지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미국 내 230만 명 규모의 베트남계 이민사회에서 금산 홍삼 인기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일부 제품은 미국에서 다시 베트남으로 역수출되고 있다.

길 회장은 “지금까지는 일부 업체 제품 위주였지만 앞으로는 금산의 더 많은 인삼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고 싶다”며 “금산 전체가 함께 잘 살아야 진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꿈은 인삼에만 머물지 않는다. 현재 경기도 남양주에서 자연사박물관을 운영 중인 그는 언젠가 이를 금산으로 옮기겠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부부가 10년 동안 세계를 돌며 수집한 희귀 화석과 광물 표본이 박물관의 핵심 자산이다. 여기에 국내 최초 수준의 공룡화석 전시와 쥬라기 테마 관광단지를 결합해 금산을 글로벌 관광도시로 만들겠다는 구상도 품고 있다.

길 회장은 “금산축제와 연계해 세계인이 찾는 관광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며 “박물관과 공룡 콘텐츠는 금산의 새로운 미래 산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화려한 성공 뒤에는 깊은 상처도 있다. 그는 13년 전, 골육암으로 딸을 잃었다. 당시 13살이던 딸 아이리스의 죽음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후 그는 딸 이름을 딴 ‘아이리스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방글라데시에 학교를 세우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의사와 목회자, 교사로 성장한 학생들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그는 “딸에게 다시 답장을 받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길 회장은 “진짜 성공은 혼자 잘사는 게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며 “남은 인생은 사회에 돌려주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금산 홍삼에 대한 관심은 점차 커지고 있다. 그는 뉴욕 공화당 관계자들과 교류하며 한국 홍삼의 효능과 경쟁력을 적극 알리고 있다.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측 인사들에게도 금산 인삼을 소개하며 미국 주류시장 확대 가능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빈손으로 미국에 건너갔던 한 청년은 이제 금산 인삼과 한국 농산물을 세계 시장에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75달러로 시작한 그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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