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날의 반찬 나눔
천을리 전원교회 박희환 목사
따뜻한 봄날 토요일 “아름다운 재능기부 다드림”에서는 반찬을 정성스럽게 준비해서 독거 노인들에게 배달을 한다. 맛있는 반찬 냄새와 향긋한 봄 냄새와 함께 배달하는 즐거움도 삶의 가치를 살찌우게 한다.
-노인이 홀로 계시다가 돌아가시는 아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어르신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이제 그만 가져와요”, “매주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맛있게 잘 먹을께요” 이런 한 마디가 서로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반찬의 양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따뜻한 음식을 배달하기 위해 점심시간을 맞추어 배달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집에 도착하니 할머니 집 대문이 끈으로 살짝 묶여 있다. ‘또 봄나물을 뜯으러 가셨거나 늘 다니시던 병원에 물리 치료를 받으시러 가신 모양이다.’ 늘 하던 대로 대문을 열고 방문을 열어서 반찬을 놓고나오려는데 오늘 따라 왠지 마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문을 여는 순간 정면에 있는 세면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할머니가 쓰러져 있었다. 너무 놀라 신발을 벗을 겨를도 없이 세면장 문을 열었다. 하의가 반쯤 벗겨져있고, 바닥에는 대변을 보신 흔적이 있다.
엎드려 넘어져 있는 모습에 몸을 만져 보았더니 이미 너무 차가웠다. 긴급하게 119에 신고를 했다. 인공호흡을 하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119 응급차량이 달려와 상태를 살피더니 이미 숨을 거둔 상태라 경찰서에서 수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연세가 많으시면 변비가 있으신 분들이 힘을 주다가 뇌출혈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경찰들이 오고 검안의사의 사인을 설명하는데 이미 이틀 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너무나 안타까웠다. 84세의 나이였지만 나물을 뜯으러 다니실 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남편과 슬하의 자녀 4형제를 모두 먼저 가슴속에 묻으셨다.
손자 손녀도 없이 유일하게 남은 직계가족은 베트남 며느리뿐이다. 그는 10년 시집을 왔고 남편을 6개월 만에 사고로 잃었다.
그러나 홀로 남은 시어머니를 10년 동안 혼자 모시고 살았다. 한국며느리도 아닌 외국인이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는 너무 착했고, 어머니에게 따뜻했다.
그리고 홀로 남은 어머니 역시 며느리에게만은 정말 애정을 쏟았다. 사고 때는 며느리가 휴가를 얻어 친정인 베트남에 들어가 있었다.
만약 그가 함께 있었다면 그렇게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아무도 도울 수 없는 그런 환경에서 할머니는 안타깝게도 그렇게 가셨다.
어쩌면 며느리에게 마지막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픈 몸으로 몸져누운 모습으로 며느리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생전에 주일마다 교회로 오셔서 뒷자리에 앉아 어떤 기도를 드렸을까? 따뜻한 곳에서 누워 돌아가시지는 않았지만 할머니의 얼굴빛은 차분했고, 고통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따뜻한 봄날의 반찬 봉사는 어쩌면 생사를 확인 하는 길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열어보지 않는 그 방문을 매주 마다 열어보며 확인 하는 일은 반찬을 배달하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좀 더 따뜻하게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계절이 바뀌는 봄보다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들의 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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