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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중앙신문

<금산의 역사문화유적>영산 신씨 사당, 대산사

by JSS열린세상 2018. 8. 24.

<금산의 역사문화>
영산 신씨 사당, 대산사


제원면 대산리에 있는 영산신씨 사당 대산사


대산사는 제원면 대산리에 있는 영산신씨의 문중사당으로 덕재 신천(德齋辛), 극재 신인거(克齋辛引), 응청당 신정(凝淸堂辛靖) 3위를 배향하고있다. 이 사당은 1959년에 건립되었다가 2008년에 중건하였다.


영산신씨 사당 대산사


영산 신씨(靈山 辛氏) 시조 신경(辛鏡)은 중국 8학사의 한 사람으로 고려에 동래하여 1138년(인종 16년) 문과에 급제하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으며, 정의(貞懿)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지금의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에 있는 영취산(靈鷲山) 아래에 뿌리를 내렸다고 한다.

 

영산(靈山)은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이다. 본래 신라의 서화현(西火縣)인데 경덕왕이 상약(尙藥)으로 고쳤고 고려 때 영산으로 개칭하였으며 1913년에 창녕군에 병합하여 영산면이 되었다.신경의 8대손에서 덕재공파(德齋公派)·초당공파(草堂公派)·상장군파(上將軍派)·부원군파(府院君派)·판서공파(判書公派)의 5파로 갈리는데, 앞의 3파는 영산신씨, 나머지 2파는 영월신씨이다.


영산신씨는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를 지낸 신천(辛?: 신지화(辛至和)의 장자)을 파조로 하는 덕재공파(德齋公派)와 좌찬성(左贊成)을 지내고 영산부원군(靈山府院君)에 봉해진 신혁(辛革: 신지화의 차자)을 파조로 하는 초당공파(草堂公派), 중정대부(中正大夫) 신성렬(辛成烈: 신공근(辛恭近)의 아들)을 파조로 하는 상장군공파(上將軍公派)로 갈라졌고, 영월부원군(寧越府院君)에 봉해진 신온(辛蘊: 신지화의 3자)을 파조로 하는 부원군파(府院君派)와 이부판서(吏部判書)를 지낸 신한(辛{革+漢-?}: 신지화의 4자)을 파조로 하는 판서공파(判書公派)의 후손들은 영월로 분관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인물로는 신천(辛?, ? ~ 1339년)으로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314년(충숙왕 1) 3월에 선부직랑(選部直?)이 되었다. 1339년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에 이르렀다. 시호는 응청(凝淸)이다. 신돈(辛旽)은 공민왕의 사부(師傅)가 되어 국정을 자문했고, 1365년(공민왕 14) 진평후(眞平侯)에 봉해진 뒤 수정이순논도섭리보세공신(守正履順論道燮理保世功臣)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 영도첨의사사사(領都僉議使司事) 판중방감찰사사(判重房監察司事) 취산부원군(鷲山府院君) 제조승록사사(提調僧錄司事) 겸 판서운관사(判書雲觀事)에 이르렀다.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여 권문세족으로부터 부당하게 땅을 빼앗긴 백성들에게 다시 땅을 되돌려주었다. 또 고려 광종 이후 페지된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여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1371년 역모고변으로 처형당했고 조선 개국 후에는 요승으로 낙인 찍혔다.


신예(辛裔, ? ~ 1355년)는 고려 충혜왕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좌정언(左正言)과 지신사(知申事)를 거쳐 첨의평리(僉議評理)가 되었다. 충목왕이 즉위하자 전 첨의참리(僉議參理)로서 서연(書筵)에서 시강(侍講)하였으며, 1345년(충목왕 1) 정방(政房)을 복치하였을 때에는 참리로 그 제조관(提調官)이 되었다. 충목왕 때 취성부원군(鷲城府院君)에 봉하여졌다.


신부(辛富, ? ∼ 1360년)는 신혁의 손자. 1355년(공민왕 4) 취산군(鷲山君)에 봉하여졌으며, 고려 공민왕 때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로 재임 중 홍건적의 난 때 함종전투에서 순절하였다.


신유정(辛有定, 1347년 ~ 1426년) : 1386년(우왕 12)에 정용호군(精勇護軍)이 었고, 조선 개국 후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었다. 1397년(태조 6)에 이산진첨절제사(伊山鎭僉節制使)가 되었고, 1400년(정종 2)에 봉상시판관(奉常寺判官)이 되었다. 이어서 공조·예조·형조의 전서(典書)를 역임하였으며, 1403년(태종 3)에 판강릉대도호부사(判江陵大都護府事) 겸 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가 되었다. 1407년에 의주도병마사가 되었고, 1410년에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를 지낸 뒤 충청도병마도절제사·평안도도안무사가 되었다. 시호는 무절(武節)이다.


신인손, 조선 세종 때 경상도관찰사·병조참판·형조판서 등을 거쳐 예문관대제학에 이르렀다.신윤(辛?, 1395년 ~ 1473년) : 문음으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시호는 호이(胡夷)이다. 신응시(辛應時), 조선 선조 때 전라도관찰사·예조판서·대사간·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신계영, 조선 현종 때 판중추부사를 역임한후 기로소에 들어갔다. 이 외에도 롯데그룹 명예회장 신격호와  제13·14대 국회의원(민주자유당) 신재기(辛再基, 1933년 ~ 2010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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