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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중앙신문

[나창호 수필] 산행 길에서 본 고운 심성의 여인

by JSS열린세상 2020. 10. 10.

나창호 수필가(전 부여군 부군수)

엊그제는 찬 기운이 없지는 않았지만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보였다. 무한히 높고 푸른 하늘에는 흰 구름이 몇 조각 떠 있을 뿐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다 보니 따분한 마음이 없지 않았던 터라 기분을 전환할 겸 모처럼의 도솔산 산행 (산책이라야 격에 맞을지도 모르지만)에 나섰다.

 

내원사 가는 길을 향해 메타스퀘이아 숲길을 가는데 나이가 좀 드신 아주머니 한 분이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마른 나뭇잎으로 무언가를 자꾸 떠밀어내고 있었다. 궁금증이 생긴 나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언데 그러세요?”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질문에 놀랐는지 흠칫하더니 이내 대답이 돌아왔다.

 

작은 벌레가 뒤집어져 있어서요.”

 

아마도 몸집 작은 곤충이 배를 하늘 쪽으로 향하고 다리를 버둥대고 있는 것을 바로 일으켜 세워주려고 그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작은 곤충 하나가 어려운 지경에 처한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구해주려고 하는 아주머니의 심성이 참 곱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머니는 내가 내려온 길로 올라가고, 나는 아주머니가 왔던 길로 내려가는데, 문득 아주 어렸을 적에 아버지(아쉽게도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나셔서 지금은 안 계신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아마도 아버지께서 읽으신 일본소설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가 떠올랐다. 하도 오래 된 이야기라서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렴풋하게나마 기억을 되살려 본다.

 

온갖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도둑질, 강도질에 싸움질은 예사고, 사람을 죽이는 일마저도 식은 죽 먹듯이 했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모두가 악한 일 뿐이고 착한 일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굳이 착한 일을 억지로라도 찾자면, 언젠가 산길을 가다가 큰 거미 한 마리를 밟아 죽일 뻔 했는데 자기도 모르는 새에 걸음걸이의 폭을 조금 넓게 한 관계로 거미를 밟아 죽이지 않은 일이 유일했다.

 

당연히 이 사람은 죽어서 지옥으로 떨어졌다. 펄펄 끓는 불구덩이 속에서 이승에서의 죗값을 치르고 있었다.

 

어느 날 염라대왕이 지옥을 내려다보다가 거미를 밟아 죽이지 않은 이 사람을 구해주고 싶었다. 지옥불 속의 사람들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안쓰러워 그 중에서 구해줄 만한 사람이 있는지를 조사해보니 그나마 이 사람이 미물이지만 거미 한 마리를 구한 선행이 있었던 것이다.

 

염라대왕은 거미를 불러 꽁무니에서 긴 밧줄을 늘여 지옥으로 내려 보내게 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줄을 타고 올라오라고 말했다. 거미는 (자기를 밟아 죽이지 않은) 그 사람이 줄을 쉽게 잡을 수 있도록 바로 코앞에다 줄을 늘여줬다. 그는 곧바로 줄을 잡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발밑에도 많은 사람들이 개미떼 붙듯 했다. 뜨거운 지옥불 속의 고통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그들도 지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염라대왕이 이 모습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속으로는 그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올라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옥 고통을 겪고 나서도 이승에서 가졌던 그 못된 심보를 고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뒤 따라오는 사람들과 함께 올라오기는커녕 바로 자기 발밑에 붙은 사람의 머리통을 발로 차서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자기 발밑까지 힘들게 쫒아 올라오면 또 그 못된 짓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가 말했다. “이것은 나만 올라오라고 염라대왕님이 내려준 줄이라고.

 

이 모습을 내려다보던 염라대왕은 거미에게 밧줄을 끊으라고 명했다. 내심 참회했기를 바랐지만 그는 참회는커녕 전혀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염라대왕은 이런 그를 다시 지옥에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도솔산 산행 길에서 만난 착한 심성을 가진 한 아주머니를 보고 옛 기억을 더듬어 본 짧은 단상이다. 이 세상에 아주머니 같은 고운 심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살았으면 좋겠다.

 

2017<대전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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