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장성수열린세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금산중앙신문

한전의 ‘주민 주도 입지선정 제도’, 허울뿐인가

by JSS열린세상 2025. 2. 9.

주민 배제된 송전선 경과대역 결정… 절차 무시 논란
산업부, 감사 지연으로 ‘제 식구 감싸기’ 의혹까지

송전(탑)선로 금산군 경유 대책위원회 집행부 임원회의 모습

한전이 송전선로 경과대역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주민 주도 입지선정 제도’를 내세웠지만, 정작 지역 주민들은 사전 설명조차 듣지 못한 채 사업이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권익위원회와 감사원조차 절차상의 하자를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전은 사업을 강행하고 있으며, 산업통상자원부는 100일 넘게 조사 결과를 내놓지 않아 ‘제 식구 감싸기’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2012~2013년 밀양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주민 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했다.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극심해지면서, 한전은 주민 수용성을 높이겠다며 2020년 11월 ‘주민 주도 입지선정 제도’를 신설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처음 적용된 충남 금산을 비롯한 9개 지자체를 지나는 345kV 신정읍~신계룡 송전선로 사업(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적용)에서부터 심각한 절차적 문제가 드러났다.

한전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전력영향평가 시행 기준’에 따르면,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주민 설명회를 개최하는 것이 필수다. 하지만 한전은 2023년 3월 8일 금산군청 담당자에게 사업을 설명했을 뿐, 주민을 대상으로 한 공식 설명회는 단 한 차례도 열지 않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2023년 12월 22일 최적 경과대역이 확정될 때까지 충남 금산뿐만 아니라 전북 임실·정읍·김제·완주·진안, 충남 논산·대전 서구·계룡 등 총 9개 지자체의 주민 대부분이 송전선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점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이 공유되지 않고 있다.

‘주민 대표’는 공무원과 지방의회 의원? 절차상 중대한 하자

입지선정위원회의 주민 대표 구성 과정에서도 심각한 절차적 문제가 확인됐다. 한전의 자체 규약(전력영향평가 시행 기준 21p)에 따르면, 주민 대표는 사업구역 내에서 고르게 선정해야 하며, 선출직 공무원(지방의회 의원 등)은 주민 대표로 포함될 수 없다.

그러나 2023년 8월 31일 구성된 1차 광역 입지선정위원회 주민 대표 30명 중 19명이 공무원 또는 지방의회 의원으로 채워졌다. 심지어 면장과 부면장 같은 행정 공무원이 주민 대표로 포함됐으며, 사업구역 밖에 거주하는 주민 6명도 주민 대표로 위촉됐다.

이 같은 문제는 법적 대응의 주요 쟁점이 됐다. 금산군 송전선로 대책위원회(위원장 박범석)는 2024년 4월 5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고, 권익위는 2024년 12월 23일 "주민대표 위원 구성의 하자가 최적 경과대역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지 재검토하라"는 의견을 표명하며 절차적 하자를 인정했다.

이어 대책위는 2024년 4월 18일, 18,150명의 서명을 받아 감사원에 감사 제보를 했고, 감사원은 2024년 10월 28일 "위법·부당함이 확인됐으므로 산업통상자원부 감사담당관실에서 조사·처리 후 민원인에게 회신하라"며 사건을 이첩했다.

그러나 산업부는 감사원의 이첩 공문을 받은 지 100일이 넘도록 조사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산업부가 한전을 감싸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금산군 송전선로 대책위원회는 1차 광역 입지선정위원회의 결의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권익위가 지적한 절차상 하자는 ‘위원 중 주민대표를 2인 이상 참여시킬 수 없는 경우’로써, 이는 한전의 자체 규정에 따른 ‘주민 주도 입지선정위원회(주도위) 구성 불가 요건’에 해당한다.

즉, 입지선정위원회 구성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만큼, 해당 위원회가 내린 최적 경과대역 결정도 무효라는 논리다.

이에 따라 대책위는 2025년 1월 31일 산업통상자원부 감사담당관실에 추가 민원을 제출했으며, 송전선로 사업의 효력정지 가처분을 요구하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3차 심문기일은 2월 14일 오후 3시 30분에 열릴 예정이다.

이번 논란은 밀양 송전탑 사건 이후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된 ‘주민 주도 입지선정 제도’가 첫 번째 적용 사례에서부터 철저히 무시된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과거 밀양에서는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이 격렬하게 전개되면서, 2012년과 2013년 두 명의 주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에 정부와 한전은 주민 수용성을 높이겠다며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지만, 이번 사례를 보면 여전히 ‘주민 배제’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특히, 산업부가 감사원의 조치를 미루고 시간을 끌면서 한전을 보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정부 기관의 책임 방기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한편, 345kV 신정읍~신계룡 송전선로 건설 사업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 후, 2027년 공사를 시작해 2029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이 장기화될 경우, 사업 일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밀양 송전탑 건설로 인해 발생했던 극단적인 주민 반발과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진행 중인 신정읍~신계룡 송전선로 사업은 또다시 주민 의견을 철저히 배제한 채 강행되고 있다.

한전과 정부가 이번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 그리고 ‘주민 주도 입지선정 제도’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보완책을 마련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댓글